왜 책을 함께 읽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에게
독서 모임 ‘서재가 있는 호수’의 베테랑 운영자 김설 작가가 들려주는
책과 독서 모임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혹시 취미 있으세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더 이상 이야기할 소재가 떨어졌을 때 가장 흔하게 묻게 되는 질문을 꼽자면 아마 이 질문일 것이다. 세상엔 정말 많고 많은 취미가 있다. 각종 운동부터 등산, 영화 보기, 그림 그리기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언급되지만 어쩌면 가장 보기 드문 취미가 바로 ‘독서’다. 하지만 그렇게 희귀한 독서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두가 독서 모임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독서 모임이란 게 생기는 걸까? 혼자 읽기도 버거운 데 굳이 함께 모여 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거길 가면 뭐가 그렇게 좋기에?
신간 『난생처음 독서 모임』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다.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사생활들』, 『다행한 불행』을 쓴 작가이자 7년째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김설 작가가 좋은 책과 독서 모임과 그곳의 사람들에 관해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책 속에는 책을 읽는 것으로 모자라 모임을 만들어 함께 읽는 사람들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반짝이고 신비로운 순간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저자의 표현법을 잠시 빌리자면 너무 재밌어서 ‘출력하고 코팅을 한 뒤 강남역 사거리에서 광고지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줘 주고 싶은` 사적인 독서 기록도 함께 담겨 있다. 저자의 솔직하고 위트 넘치는 문장들은 그녀가 소개하는 책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렇게 이 책은 혼자만의 길을 걷던 사람에게 타인과 함께 손잡고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법을 안내한다.
김설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하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세상만 볼 때는 사나운 꿈을 꾸고 아침을 맞았지만 고양이와 내면을 보면서부터 평온한 꿈을 꾼다. 사는 대로 쓰고 쓰는 대로 살고 싶다. 저서로는 『사생활들』, 『다행한 불행』이 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전공보다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글쓰기만큼이나 고양이를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여유롭고 흔들림 없는 일상에 관심이 많아졌고, 매일같이 삶을 우아하게 만드는 잡다한 시도를 한다. 그 방편으로 미니멀 라이프와 맥시멈 라이프를 오가고 있다. 일요일 아침에는 독서모임 ‘서재가 있는 호수’에서 읽고 쓰면서 그럴듯한 글보다는 시시콜콜한 글로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는 조용한 욕망을 품고 있다. 저서로는 딸의 인생에 찾아온 우울증을 함께 극복하며 쓴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이담 북스)가 있다.
차례
프롤로그 책과 사람 속으로 가는 길
1장 혼자 읽던 사람이 함께 읽는 사람이 되기까지
다정함이 넘실대는 곳으로
서재에 숨어서, 서재에 모여서
내게 말을 거는 책을 만나기까지
심장을 두드리는 책 하나
작가를 덕질하는 기쁨
여유롭고 느슨하게
사람에게 기대고 책에 기대며
여전히 망설이는 당신을 위하여
2장 책을 나누고 사람에게 배우며
책에서 찾은 지도를 서로 나누며
책과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만난 것들
괜찮은 어른
당신을 만나서 나는 더 넓어지고
못 말리는 독서 편식쟁이들
책이 아닌 것에서 배운다
좋은 대화, 좋은 토론에 대하여
꾸준히 읽는 사람은 쓰게 된다
3장 나도 몰랐던 내가 책갈피 속에 숨어 있다가
쓸모없음으로 내가 되는 일 『필경사 바틀비』
내 손안의 선택지 『자기 결정』
세상과 엇박자로 막춤을 추며 『행복의 정복』
가질 수 없어 더 목마른 마음 『A가 X에게』
나의 밖에서 나를 흔드는 자 『슬픈 짐승』
검소함과 허영 사이에서 『사물들』
매일 한 편씩 시를 읽는 마음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4장 매일 깊고 넓어지기를 바라며
사랑을 맡겨둔 사람처럼 『엄마를 부탁해』
당신은 어떻게 관찰자가 되었나요? 『동물원에 가기』
이해 불가가 이해 가능이 되는 때가 찾아오면 『설국』 『무진기행』
다른 방법이 없어 그늘에 산다 『안녕 주정뱅이』
역사 포기자의 잠도 깨우는 책 『광기와 우연의 역사』
우리가 이 소설을 읽는 마지막 세대가 아니길 『토지』
같은 책 다른 이야기 『춘향전』
우리에겐 오독할 권리가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
고양이와 개가 말을 한다면 『섬』 『어느 개의 죽음』
에필로그 리듬을 이어가며 그냥 계속 읽고 나눕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혼자 읽던 사람이 함께 읽는 사람이 되기까지
김설 작가는 1장에서 독서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독서 모임의 재미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소개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독서 모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원래 ‘고독한 애서가’라고 자칭할 만큼 혼자 읽는 사람이었다. 책은 당연히 혼자 읽었고 그래야 즐거웠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아니던가.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처럼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도서관을 다니던 어느 날, 처음으로 낯선 외로움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니 거기엔 저자와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같은 외로움을 얼굴에 묻힌 사람들이었다.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슬픔을 위로하고 불안을 달래주었던 책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저자는 ‘서재가 있는 호수’라는 독서 모임을 직접 꾸렸다.
독서 모임이라고 하면 책에 대해 해박하거나 아주 많이 읽거나 적어도 읽기로 한 책은 모두 완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내가 독서 모임 같은 델 나가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그런 걱정은 아예 시작하지도 말라는 듯 ‘서재가 있는 호수’의 느슨한 분위기를 전한다. 운영자인 저자는 일명 ‘더듬거리는 독서’를 한다. 책이 말하는 내용이 아무리 강력해도 종종 그 속에서 길을 잃는다. 어떤 구절에 감탄하느라, 혹은 어떤 일화에 귀 기울이다 여기가 어디였는지 몰라 길 한복판에서 멈칫한다. 그렇게 헤매다가 보면 원래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 아니라 다른 내용을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이미 읽은 책과 아직 읽지 않은 책마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렇게 책 속에서 엉뚱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다른 독서 모임 구성원들이 길을 찾아준다.
저자는 독서 모임에서든 아니든 책은 그렇게 느슨하게 읽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래도 독서 모임 구성원들 사이에는 여전히 다정이 넘실대고 다 같이 책을 귀여워하며 책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간다. 책을 꼼꼼히 정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당신의 일상 한 모퉁이에 책을 어떻게든 끼워 넣었다는 사실이다.
독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누군가의 삶만큼 풍요로운 도서관은 없다
2장은 저자가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을 다뤘다. 독서 모임으로 그 전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진 사람, 저자를 진땀이 나도록 곤란하게 했던 사람, 깊은 감동을 줘 눈물을 쏟게 만든 사람들이 책 속에 있다.
우리는 언제 책을 가장 필요로 할까. 저자는 삶이 힘들 때인 것 같다고 답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불행을 겪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저 삶이 괴로운 순간, 그럴 때 사람들은 책을 찾는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절망스러운 순간이 있으니, 그에 관한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이 꼭 필요하다. 책이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표가 되는 간접 경험을 제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지도를 숨겨 놓는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독서 모임은 특별한 지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나이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직업도 다르다. 나아가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책을 두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들은 모두 책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건 사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수많은 삶을 치유하는 방식을 알게 되는 일이다. 저자의 말 대로 누군가의 삶만큼 풍요로운 도서관은 없다. 독서 모임에는 인생 경험이 많은 현명한 선배도 있고 나보다 훨씬 똑똑한 동생도 있다. 거기서 나의 실패를 털어놓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학습할 수도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서 모임 구성원 중 한 사람이 했던 말을 전했다. 독서 모임에서 경험한 신비로운 순간은 단순히 책에만 있지 않았다고. 사람들의 마음 사이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고 말이다. 마치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정처 없이 마음이 길을 잃어 막막한 기분이 들 때 그 반짝이는 걸 떠올리면 조금 힘이 난다고 말이다.
어느 날, 심장을 두드리는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면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우연히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고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책 속에 쓰인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보고 난 후 그동안 저자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고통을 떨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그동안 경험한 고난과 역경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앞서 살아온 사람들이 겪어낸 것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이렇듯 3장과 4장에서는 저자의 삶에 영향을 줬던 책과 그 책에 관한 저자의 사적인 독서 기록이 담겨있다. 그 솔직한 기록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저자의 일상 속 상념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을 읽으며 씁쓸함을 느꼈다. 책이 하는 말이 모두 맞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 현실에는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에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삶에 휘둘린 사람의 심경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이는 건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조르주 페렉의『사물들』을 읽고 주인공의 방을 상상하며 ‘요즘이었다면 저 방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 대박이 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거나 존 버거의 『A가 X에게』를 읽으며 다른 남자들은 내 남자보다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그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하고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보고 싶게 한다.
책 속에 꿀단지라도 숨겨 놓았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기어코 함께 책을 읽나
요즘 독서 모임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된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유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작은 모임을 만드는 건 이미 유행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왜 혼자가 아니라 함께인가. 이는 아마도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는 그것을 타인과 공유할 때 비로소 끝을 맺고 타인의 공감을 얻을 때 마침내 완성된다.
저자는 독서 모임에서 책 속으로 가는 길은 간단히 안내하는 대신 양쪽 귀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나면 독서 모임에 온 사람들이 책 이야기를 빌려 때로는 눈물이 나고 때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다른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책은 결국 저자가 독서 모임을 하면서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의 기록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잘 못 읽는 사람, 한때는 좋아했던 책과 어느새 멀어진 사람, 책만 읽으려면 잠이 쏟아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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